기업 내 같은 마케팅 파트에 근무를 하고 있더라도 각자 맡은 세부 직무와 역할이 다름으로 ‘마케팅’을 거대한 사업부 단위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때문에 마케팅이라는 복잡스런 영역을 하나의 원리로 이해하기 위한 통찰력과 인사이트를 키워야만 경쟁력있는 인재로 성장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는 회사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리가 그들은 ‘노동자’라는 명제가 되듯, 다양한 영역을 나열하기엔 입만 아픈 이 마케팅 분과를 하나로 묶어 주는 시발점이 되는 명제는 이러한 활동들이 모두 ‘고객(customer)’과 관련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된다면 저렇게 뻔한 소리를 누가 못하냐며 반문을 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가 경험하는 사업 환경에서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많아졌으며 일반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하여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고객’을 위해 당신은 얼마나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라고.
세상에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업 내 마케팅 전략을 타겟이 되는 고객에 맞춰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마케팅 핵심역량을 갖춘 기업’은 매우 적다. 가장 치열하고 선진적인 기업 환경을 갖춘 미국에서 조차 ‘철저한 마케팅 역량’을 갖춘 기업들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 한다.
시스템적 마케팅 역량을 갖춘 기업이 되기 위해선 우리가 알고 있고 강조하는 단순한 ‘고객’의 개념을 넘어 이것을 철저하게 분해하고 파헤치는 집요함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맥주회사인 밀러(Miller)다. 비록 지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AB에 인수되었지만 그 시작은 1855년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주의 작은 지방 양조장이었다. 미국 내 20위 안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작은 지방 맥주 제조업체에 불과했던 밀러가 미국 내 손에 꼽을 정도로 큰 맥주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고객’을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분석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컨대, 기업 성장을 위해 시장 조사 사업부를 사내에 가장 먼저 개설한 기업이 밀러였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밀러는 맥주 시장에서 20%에 가까운 소비자가 전체 시장의 70-80%의 매출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8:2의 법칙(팔레토 법칙)의 원리가 밀러의 분석에 의해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밀러는 다른 맥주 제조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재무적 상황이 넉넉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마케팅의 모든 역량을 이 20%의 고객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 중 대다수가 블루칼라에 남성 제조업 노동자였던 점에 착안하여 이들을 직접적 타겟으로 한 광고 제작에 총력을 기울인다.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기름때를 온몸에 묻힌 노동자가 구슬땀을 흘린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뒤집어 쓴 먼지를 씻어 내기 위해 샤워를 한 노동자는 수건으로 마르지 않은 머리를 털어내며 냉장고로 다가가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속에 시원한 모습으로 노동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밀러 맥주. 그리고 이어지는 광고 문구 “It's Miller Time.”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고의 효과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러를 단번에 미국을 대표하는 맥주 제조업체로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의 중요고객(Heavy User)의 선호를 파악하기 위한 시장조사에서부터 이들이 주로 맥주를 구매하는 유통망에 대한 전략적 접근, 합리적인 가격, 맥주 맛과 용기의 디자인, 광고 및 판매 촉진 방법 등 마케팅 전 영역에 걸쳐 단단한 일관성을 갖춘 시스템적 접근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이것이 지방의 작은 맥주 제조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밀러의 성공 이후 많은 기업들이 이를 벤치마킹 케이스로 삼아 타겟 고객과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게 되었으며 고객에 대한 집요하고 집중적인 분석의 중요성을 깨달게 된다.
밀러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고객 분석을 통해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중요성을 인지한다는 것을 넘어 이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들에게 효과적일 수 있는 전략들을 마케팅 영역 전반에 유기적으로 조율(alignment)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프로세스의 수립과 운영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마케팅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리더가 조직 설계에서부터 업무 분담, 조직원들의 공유된 마케팅 비전 등을 심어줄 때 비로소 가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언급하였듯 수많은 기업들이 고객에 대한 이해와 분석의 중요성을 목이 터져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시스템적 마케팅 역량을 갖춘 기업들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한편, 이 같은 고객에 대한 분석은 대기업보다 중소, 중견기업에서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문어발식의 확장적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태생적으로 특정 타겟에 집중하여 마케팅 역량을 집중 했다기보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에 따라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해왔다. 즉, 올인(All-in)전략보다는 분산적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반면 중소, 중견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한정적인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에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엉성한 마케팅 전략으로는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빠른 시일 내에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밀러의 사례가 그러했듯 이미 시장이 몇몇 대기업들에 의해 잠식되어 있는 경우, 이 같은 특정 고객에 대한 역량집중과 마케팅 시스템의 구축은 기업의 생존과 지속 경영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다양한 세부 활동을 가진 마케팅을 하나의 관점으로 묶는 핵심 개념이 ‘고객’이자,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마지막 단계 역시도 ‘고객’에서 끝이 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단순히 ‘고객’을 강조하여 조직원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은 누구이며 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마케팅 전 분야에 걸쳐 일관성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체계적인 리더십이 필요 되는 시대다.
더욱더 치열해져 가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의 생존을 담보하는 것은 시대의 조류를 읽고 대처하는 선제적 역량 강화에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낡은 고객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시야로 조직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이 기업 전반에서 시도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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