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둑 열풍이 심상치 않다. 드라마 속 ‘미생부터 ’더 글로리’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축소판’인 바둑을 소재로 활용한 콘텐츠가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바둑 열풍의 시작은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들을 양산하였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었다. 코스닥 시장에서 찬밥 취급을 받던 인공지능 및 로봇 관련 기업 주식들이 급등하였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4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 지목되며 연일 장밋빛 미래가 점쳐지는 요즘이다. 그만큼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간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재밌는 점은 이 현상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봤을 때 또 다른 게임의 승자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승리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바둑의 세계에서 어떤 경우의 수가 나오더라도 승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것은 바로 ‘구글’의 입장이었다. 설령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전패를 하더라도 매스컴을 통한 천문학적 홍보(publicity) 효과를 누렸을 터인데, 알파고가 이 9단을 상대로 4:1의 승리를 하자 “역시! 구글!”이라며 환호하는 소비자들의 긍정적 마케팅 효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구글의 ‘표면상 보여지는 혁신적 기술력’과 ‘내면에 감춰진 마케팅 역량’이 적절히 조화되어 이뤄낸 ‘완벽한 퍼포먼스’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에 의해 설립되었던 조그만 벤처기업이 어떻게 2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원동력에 대해 수많은 시각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융합(convergence)에 능숙한 조직 문화를 가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에서는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의 비율에 버금갈 만큼 많은 수의 인문, 역사, 심리, 사회 영역을 전공한 전문 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인문’과 ‘자연’의 만남은 경계 없는(boundless) 대화를 이끌어 냈고 이를 통해 세계 어느 조직보다도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가 창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장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데 급급한 단기적 투자가 아닌, 대중들의 거대한 심리를 읽고 이를 제품에 투영하여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심기 위한 장기적 투자였다는 점에서 구글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마케팅 부문에 있어 경계를 넘나드는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 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봐야만 한다.
이처럼 융합적 사고는 경영학 전반에서 일고 있는 시대적 요구이자 최근 마케팅 분야의 변화를 이끄는 태풍의 눈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최근 생겨난 흐름이냐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융합을 통해 한 조직의 번영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해 나간 역사적 사례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서양 문명에 있어 미술, 건축,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던 르네상스 시대는 이탈리아의 명문 가문 ‘메디치 家’의 융합적 사고로부터 출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예술가, 철학가, 과학자 등 폭넓은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을 집안으로 초청해 이들 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얻어진 새로운 생각들을 융합시킨 결과, 유럽 문화의 전성기를 꽃 피워낸 것이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뇌리 속에 ‘유럽 최고의 명문 가문, 메디치 家’라는 역사적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시대만 달랐을 뿐, 앞서 설명한 구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위의 사례들은 기업 내 의사 결정자들에게 있어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제고시키고 어떤 방향으로 기업 경영을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마케팅 분야에 있어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해 장벽을 허문 ‘융합’ 마케팅이 더욱 필요 되는 상황이다. 첫 째, 경쟁기업이 많아지고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기술의 수명이 짧고, 과거 ‘문화적 충격’이라 여겨질 만큼의 기술 진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손빨래를 하던 시절 세탁기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사회에 미친 파장, 라디오로만 들리던 방송이 작은 박스 속 퍼포먼스로 시현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문화적 충격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신기술을 대할 때의 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짧은 기간 내에 경쟁 기업들이 속출하고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기술 혁신’만으로는 경쟁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운 환경임으로 기술력의 기본 소양을 갖추되 해당 기업만의 가치(value)와 정체성(identity)을 제품과 서비스에 주입시키기 위한 장르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된다..
소비자들의 변화된 패턴 역시 융합 마케팅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TV, 라디오 등의 대중 매체를 넘어 인터넷, 모바일 등의 개인 매체로 정보 원천이 확대되면서 과거 몇몇이 누리던 정보 우월성은 사라졌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소비할 수 있어짐에 따라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점차 비슷해져 가고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와 같은 환경적 영향에 의해 세상이 비슷해져 가는 현상을 “동형화(isomorphism)”라고 정의하는데, 이 같은 동형화 현상이 소비에 있어 고객 전반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즐기는 것의 패턴이 비슷해지고 창의성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상황을 맞이함에 따라 이 상황을 자각하고 ‘다름’을 강조하여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마케팅 역량이 요구된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있고 소비자의 패턴이 동형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기술력은 기본적으로 갖추되 그 안에 차별화되는 ‘철학’을 심는 융합 마케팅 역량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융합된 시각이 마케팅 전략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선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에 가장 먼저 다양성(diversity)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이뤄져야만 한다. 다양성이 높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창의적인 사고와 유연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선 구글의 예처럼 전공이 전혀 다른 인력들을 채용하고 배치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면 기업 내 가장 말랑말랑한 사고를 가져야만 하는 마케팅 팀 구성에 있어서 만큼이라도 성별, 전공, 지역, 국적, 나이 등이 혼재되고 많은 생각들이 오가며 융합 시너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기업의 모든 결과물은 ‘사람’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조직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인력의 채용 및 배치가 결국 장기적으로 융합적 마케팅 역량을 높이는 핵심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융합적 마케팅 역량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창의성’을 자극하는 환경을 인위적이고 지속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창의성과 관련한 논문에선 인간의 창의성은 교육에 의해 충분히 개발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환경의 지속적인 노출과 기업 분위기는 개별 종업원들의 잠재적 창의성 역량을 깨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교류가 없던 팀 간 업무를 소개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거나, 마케팅 전략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마케팅 팀 외에서 공모받는 방법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이는 모든 것이 당연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감에 있어 모든 일들이 일상적이고 당연시 느껴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 경계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그널은 더 이상의 발전을 막고, 사고의 교류를 단절시켜 정체, 침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분야에 있어서도 이 같은 원리는 예외일 수 없다.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는 전략은 기업 운영에 있어 되래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자극이 끊임없이 필요하며 그 힘은 원천을 융합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문화에 이끌려가는 기업이 아닌 문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조직, 융합 마케팅 역량 강화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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